불안정한 현재 시기, 라틴아메리카 진보 정부들의 취약점(2024년 34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The Weakness of Progressive Latin American Governments in These Precarious Times: The Thirty-Fourth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미국이 냉전을 위한 기구로 1948년에 창설된 미주기구(OAS)에서 2024년 8월 16일에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 관한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결의안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CNE)가 가능한 한 빨리 모든 선거 관련 세부 정보(각 지역 투표소 단위 투표 기록(스페인어로 악타스) 포함)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CNE가 베네수엘라의 선거 절차 기본법(LOPE)에 위배되는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러한 투표 정보 공개가 일반법에 위배될 수 있기에 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선거법에서는 CNE가 48시간 이내에 선거 결과를 발표(146조)하고, 30일 이내에 공표(155조)하며, 투표소 데이터(악타스 등)를 표로 정리하여 공개(150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결의안에 관한 표결이 워싱턴 DC에 있는 OAS 본부의 시몬 볼리바르 회의실에서 이뤄진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베네수엘라와 인접 영토를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해방했고, 이 지역의 자주를 강화하기 위해 통합 프로세스를 시작한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에서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국명에 그의 이름을 넣었죠. 1998년에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을 당시, 그는 볼리바르를 베네수엘라 정치계의 핵심으로 내세웠고,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 등 볼리바르의 업적을 더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ALBA를 통해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라는 지역의 자주를 확립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가겠다는 것이었죠. 1829년에 볼리바르는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자유라는 이름의 절망으로 고통스럽게 만들도록 운명이 예비된 것으로 보인다”고 썼습니다. 현시대에 그가 말한 절망은 미국이 군사 쿠데타나 제재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볼리비아,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는 이 ‘고통’을 중점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OAS 결의안은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볼리비아, 온두라스, 멕시코,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쿠바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쿠바는 1962년 OAS에서 추방되었고, 카스트로는 ‘미국의 식민지부”라고 불렀죠. 2023년에 OAS에서 탈퇴한 니카라과도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AMLO라고 줄여서 부름)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 헌법 89조 10항을 인용하여 이 OAS 회의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이유와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해당 조항에서는 멕시코 대통령이 ‘국제 관계에서의 비개입, 분쟁의 평화적 해결, [그리고] 위협이나 무력 사용 금지’ 원칙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합니다. 이를 위해 멕시코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적법한 기관”이 분쟁을 조정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최고 법원이 바로 그 적법한 기관에 해당합니다. 다만 최고 법원도 야당이 선거의 정당성을 거부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특수한 유형의 극우 세력이라고 분석한 바 있는 이 야당 세력은 미국의 군사 개입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을 전복하려 합니다. 멕시코 대통령의 합리적인 태도는 유엔 헌장(1945)과 그 궤를 같이합니다.
중도 좌파 또는 좌파 정부가 들어선 국가 중 다수가 미국의 OAS 결의안 표결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에는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도 있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1973년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로 사망)를 존경한다는 대통령이 이끄는 칠레는 (베네수엘라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많은 이슈에서 미 국무부와 외교 정책 방향성이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6년부터 칠레 정부의 초청에 따라 칠레에는 거의 50만 명에 달하는 베네수엘라 이주민이 유입되었습니다. 이중 대다수가 불법 이주민이고, 날이 갈수록 이주민에 적대적으로 되고 있는 칠레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상황 변화를 통해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에게 귀국 명령을 내릴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책에 관한 칠레의 열정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는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입장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저희의 최근 도시에 신파시즘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를 재발견해야 하는 라틴아메리카(To Confront Rising Neofascism, the Latin American Left Must Rediscover Itself)에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두 번째 ‘핑크 타이드’ 또는 진보 정부의 주기가 시작되었다는 가정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현재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정세를 분석합니다. 1998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당선으로 시작된 첫 번째 주기는 2008년 금융 위기와 라틴아메리카를 상대로 한 미국의 반격과 함께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라틴아메리카의 통합과 지정학적 자주를 추구함으로써 미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주기는 중도 좌파 성향이 더 강한 것이 특징이고, ‘더 취약해 보입니다’. 이 취약성은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상황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의 브라질 정부와 구스타보 페트로의 콜롬비아 정부는 각각 외교부에 있는 변하지 않는 관료주의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브라질 외교장관(마우로 비에이라)과 콜롬비아 외교장관(루이스 힐베르트 무리요) 모두 좌파나 중도 좌파가 아닙니다. 그리고 둘 다 미국 주재 대사를 역임하여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콜롬비아에 여전히 10개가 넘는 미군 기지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두 번째 주기가 취약한 이유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번 도시에에서는 다음과 같이 취약성의 이유를 일곱 가지로 설명합니다.
전 세계적인 금융 및 환경 위기로 이 지역 국가 간에 어떤 길을 갈지에 관한 차이 발생함.
미국이 첫 번째 진보의 물결에서 잃었던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함. 특히 이는 중국의 라틴아메리카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것임. 여기에는 이 지역의 천연자원 및 노동력이 포함됨.
노동 시장의 우버화(정보통신 기술의 접목을 통한 기존 산업의 변화. 모바일 네트워크 등 정보통신을 이용해 소비자와 공급자가 직접 상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을 의미함 - 옮긴이) 심화. 이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노동자계급의 대중 조직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 미침. 그 결과 노동자 권리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노동자계급의 힘이 약화함.
사회 재생산의 재구성. 사회복지 정책의 공공 투자를 줄이는 것이 핵심으로, 돌봄의 책임을 사적 영역으로 돌려 주로 여성에게 더 많은 부담을 전가함.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 증대. 이는 미국이 경제력의 쇠퇴에 대응하여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사용함.
이 지역 내 각국 정부가 자주를 추구하기 위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이나 그로 인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교역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패권을 확보하려는 미국에 직접 맞서고 있지 않음.
진보 정부 간 분열은 미주 대륙에서 신파시즘의 부상과 함께 진보적인 역내 의제(첫 번째 진보 물결에서 제시된 것과 유사한 대륙 통합 정책 포함)가 성장하는 것을 저해하고 있음.
이러한 요소 등으로 라틴아메리카 진보 정부들이 확신을 갖고 행동하지 못하고, 남반구의 자주와 파트너십이라는 공동의 볼리바리안 드림을 현실화할 역량이 약화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하게 더 짚어야 할 점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같은 사회에서 계급 세력 균형이 진정한 반제국주의 정책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2022년에 룰라와 페트로가 당선되어 선거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는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지지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사회적으로 민중을 위해 진짜로 변혁적인 의제를 추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선거 승리를 위해 연합했던 세력에는 중도우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회 권력을 휘둘러 진보 지도자들이 자신의 흠잡을 데 없는 자격(대통령 - 옮긴이)에도 불구하고 국정 운영에서 재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런 진보 정부의 취약성이 특수한 유형의 극우 세력이 성장하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도시에에서 주장한 것처럼, “노동자계급의 존재에 관한 일상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좌파 정치 프로젝트 건설이 어렵다는 점은 많은 진보적인 선거 프로젝트가 대중의 요구와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불안정 일자리에 시달리는 노동자계급은 각국과 지역 전체의 자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전제로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의 생산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 지역의 많은 국가가 베네수엘라의 자주권을 축소하려는 미국에 동조한다는 사실은 이렇게 취약한 선거 프로젝트에 자주권을 수호할 역량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멕시코 시인 카르멘 부로사는 ‘쿼바디스’라는 시에서 미국 정부의 의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행위의 문제적 속성을 고찰합니다. 그는 “날아다니는 총탄에는 신념이 없다”고 썼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진보’ 정부에는 정권 교체 작전이나 역내 다른 국가의 불안정 조장에 관해서는 신념이 없습니다. 이들 정부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겠습니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