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자본, 약탈자본 GM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한국: GM 노조는 5년의 미래와 홀로서기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성재(대우자동차노동조합(현 한국지엠지부) 19대 위원장)
[편집자 주] 한국GM 노사는 4월 23일 법정관리 시한을 1시간 앞두고 임단협 교섭에서 잠정 합의했다. 노사는 군산 공장에 남은 680명 노동자에 대해 추가 희망퇴직과 전환배치를 시행할 것을 결정했고 경영정상화를 위해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은 지급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단협 개정을 통해 법정 휴가, 상여금 지급방법, 학자금 등 복지지급액 1000원억 축소에 합의했다. 정부는 한국 GM 노사가 이번 합의에서 고통을 분담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GM의 장기 경영 의지가 확인되면 재정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글은 4월 18일 이성재 전 대우자동차노동조합(현 한국지엠지부) 19대 노조위원장이 한국 GM 사태의 원인과 향후 방향을 공유하기 위해 작성한 기사이다.
“백주 대낮 에 칼 만 안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 꼴이다. GM은 6.13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한국정부를 노골적으로 협박하면서 그간 급격히 부실해진 의혹투성이인 한국GM에 대한 경영실사를 조기에 끝내고 지원을 약속하라는 것이다.
먹튀 GM에게 당한 호주 사례 데자뷰다. 지난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GM은 호주 정부에게 1억5천만 호주달러(1천3백억원)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에 맛들린 GM은 소형차 생산중단을 협박하면서 연구개발비 계속 지급을 강요하자, 호주정부는 어쩔 수 없이 2억7천5백만 호주달러(약 2천3백억원)를 2012년 지급했다. 그러나 GM의 탐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3년 9월 총선을 앞둔 호주정부에게 2억6천5백만 호주달러를 또 요구했고, 총선 후인 12월에도 1억5천만 호주달러의 추가 지원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총선에서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약탈적인 GM에 넌더리가 난 호주정부는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고 선언하자 GM은 철수를 발표한 것이었다. 이때까지 GM에게 지원해 준 금액은 연구개발비 외에도 2001년~2012년까지 인건비 보조금 명목으로 20억 호주달러(약 1조7천억원)에 달했다. 호주 정부는 GM을 붙잡아두기 위해 2조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서도 결국 ‘먹튀’를 당한 셈이다.
현재 GM 본사는 한국정부에 2조 7000억원의 본사 차입금을 본사차원에서 전액 출자 전환 [1] 으로 해소할테니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증자에 참여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2022년까지 SUV와 CUV 각각 1차종씩 부평1공장과 창원공장에 배정 투입에 맞춰 여기에 필요한 신규 28억 달러 중 산업은행 17%에 해당하는 5천억원 지원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창원공장과 부평공장을 외국인투자지역 [2] 으로 지정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주주·채권자·노조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그리고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이라는 3가지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GM은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면서 책임이 아닌 특혜만 요구하고 있으며, 17.2%의 지분은 가진 산업은행(정부)도 GM의 약탈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임을 방기한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사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고자 매년 해오던 임금인상과 성과금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한국지엠지부 노조는 ‘군산공장 680여명의 총고용보장, 부평2공장에 전기차와 단종되는 캡티바 후속 차종 투입, 그리고 외주화 내지는 통폐합하려는 AS의 정상화’를 마지노선으로 투쟁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GM, GM과 인연은 어떠했으며, 어떤 관계였나?
한국GM은 GM과 50여년의 인연이지만, 악연인 회사다. GM은 지난 1972년 한국 자동차의 효시인 신진자동차와 50:50 합작으로 GM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인연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80년대 불어 닥친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회사가 어려워지자 신진자동차 지분이 산업은행으로 넘어갔고, 대우가 당시 산업은행 지분 50%를 인수해서 83년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바꾼다. 87년 독일 오펠에서 생산하던 카데트를 ‘르망’으로 출시하면서 전성기를 여는가 싶었는데, GM본사가 부품 등 원재료를 비싸게 넘기는 이전가격 문제와 기술이전에 인색한 기술이전문제등 등 GM의 약탈경영에 신물난 대우 김우중회장은 92년 GM과 결별을 선언한다.
그러나 98년 초국적자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표적으로 삼은 동남아 IMF 경제위기는 한국도 비껴갈 수 없었다. 이에 당시 한국의 재벌 2위였던 대우그룹이 워크아웃 되면서 대우자동차도 함께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만다. 포드가 포기하자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GM은 2001년 고작 4억 달러에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는 행운을 누린다. GM대우의 시작이다. 그간 북미와 대형차, 트럭 중심이었던 GM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전 세계, 각 대륙에 생산공장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회사로 발돋움한다. 당시 GM의 릭 왜고너(Rick Wagoner·52) 회장은 ‘2005 북미모터쇼’에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 “GM대우는 출범한 지 불과 2년 만에 재정적으로 자립했다”면서 “미래 GM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GM이 파산하고 다시 New GM으로 탄생하면서 조기에 정상화된 것도 전적으로 GM대우 덕분이었다. 당시 유가가 배럴당 100$를 넘는 상황에서 소형차가 없던 GM에게 소형차를 제공했던 곳이 바로 GM대우였다. GM대우는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축적된 소형차와 경차에 관한 우수한 기술력과 공장의 생산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GM의 대표 브랜드인 쉐보레 세단 판매량의 거의 40%를 당시 GM대우가 담당할 정도였다.
4년 만에 완전히 망가져 버린 한국GM
그렇지만 한국 GM은 법률적으로 독립적인 회사이지만 기술과 부품과 관련해 GM 본사에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본사의 결정에 휘둘리는 프랜차이즈와 같은 관계에 불과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GM대우에게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전 세계 각 대륙마다 공장을 설립해 그간 GM대우에서 개발한 차를 현지 생산하게 된 GM은 생산량의 85% 이상을 수출해 온 GM대우가 부담스러워졌다. “사냥을 끝낸 사냥꾼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GM의 GM대우에 대한 역할 재조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회사명과 브랜드를 ‘GM대우’에서 ‘한국GM’으로 바꾸고, 브랜드도 ’대우‘를 완전히 버리고 ’쉐보레‘로 바꿨다. 한국GM에 대한 다운사이징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자 생산량과 매출은 급감하고 손실과 부채비율은 급등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위 표에서 보듯이 매출은 2012년 15조에서 2017년 10조(2017년 감사보고서 참조)로 2/3로 줄어 들었다. 부채비율은 경이롭게 84,980%인 자본잠식상태였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누적손실이 무려 3조1,315억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망가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망가졌나? 그 이유는?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2013년 GM의 일방적인 <쉐보레유럽 철수> 결정이었다. 당시 쉐보레유럽은 한국GM의 미국 다음의 제2 수출지역이었다. 그런 유럽지역에서 철수를 한국GM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은 자기 팔다리를 자른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GM이 대체 수출지역을 마련해 준 것도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는 과도한 연구개발비 수탈이었다. 자동차회사에서 연구개발은 당연한 것이고, 필요한 것이지만, 한국GM의 연구개발비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였다. 하나는 한국 GM 연구개발비는 한국GM에게 무형자산(지적 재산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연구개발비는 부담하는데 지적재산권은 전적으로 GM본사가 가져갔다. 그래서 한국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소위 ‘갑질’인 것이다. 둘째로 한국GM의 매출과 수익규모에 비해 얼토당토않게 많은 비용을 부담시켜 왔다는 것이다. 비용 즉 제조원가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연구개발비는 제조원가율을 엄청나게 높여(동종업계 평균 82%보다 훨씬 높은 93%) 결과적으로 한국GM의 손익에 마이너스 결과를 초래했다.
이 연구개발비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한국GM보다 매출액이 3배 가까이 차이 나는 기아자동차와 비교해도 확연하다. 한국GM은 15년간 연평균 매출 11조7,750억원에 연구개발비는 4,802억원을 지출했다. 매출액 대비 평균 4.08%이다. 기아차는 연평균 매출 30조2,088억원에 연구개발비는 평균 8,731억원을 지출했다. 매출의 2.89%다.(헤럴드경제 2018.2.21.일자 [홍길용의 화식열전])
그 밖의 각종 비용을 한국GM에 떠넘기는 ‘갑질’을 해 왔다. 업무지원비의 경우도 지난 2013년 느닷없이 859억원을 요구하자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 아니라며 이사회에서 거부하자 2014년부터 가져간 것이다. 기존의 업무 체계를 잘 사용하고 있던 한국 GM은 본사의 업무 체계 일원화라는 계획에 따라 많은 업무지원비를 지불해야 했다. 또한 쉐보레 유럽과 러시아 철수의 경우도 GM 본사 차원에서 결정해 놓고 책임과 비용은 전적으로 한국GM에게 부담지운 것이었다.
신뢰를 잃은 GM, 하지만 5년의 미래는 확보해야 한다.
한국GM의 독자생존! 한국GM 내부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바람일 것이다. 그간 한국에서 지난 50여년간 보여왔던 GM의 행태를 보면서, 또한 최근 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행태를 떠올린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의 현실에서 냉정히 보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준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인 것을. 독자적인 브랜드도, 유통 네트워크고,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도 없다. 아직 빨어 먹을 것이 있기에 GM이 당장 떠날 생각은 없기도 하지만, 당장 떠난다면 그 부담은 온통 한국GM, 부품협력사들, 한국자동차산업 전체, 그리고 정부가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GM이 4월20일을 법정관리 신청 데드라인으로 설정해 놓은 4월18일 현재, 정부(산업은행)와 GM사이에서는 막판 타협 가능성이 예상된다. 하지만 또 다른 한 축인 한국GM 노사협상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GM과 한국지엠지부 노동조합은 지난 2000년 부도와 법정관리를 경험했기에 그 파장과 손실부담 등을 잘 알고 있다. 최근 금호타이어나 STX조선 사례 등도 봐 왔기에 파국적인 상황은 피할 것으로 현장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한국지엠지부 노동조합은 현재 곧 폐쇄당할 군산공장에 남아있는 680명의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한편 내년이면 폐쇄 위기에 처할 부평2공장의 추가 신차 투입과 AS 외주화 철회 및 정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최소한 5년의 미래는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2001년 대우차 헐값 졸속매각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다
이것은 지난 2001년에 대한 뼈저린 교훈을 제대로 받아 안지 못한 한국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노동조합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부도난 대우차를 이번 기회에 “한시적 공기업화” “국민기업화”를 요구했었다. 이런 방안들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사회주의적인 방식이라며 이념적으로, 또한 대우차는 경쟁력이 없다고 폄하하면서 무조건 해외매각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해 왔던 대다수 학자 및 전문가들, 언론, 그리고 정부까지 오늘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와 정부를 상태로 법정관리, 부도 운운하면서 노골적으로 협박을 해대는 GM은 어떤 회사인가? General Motors가 아니라 Government Motors 아니던가 말이다. 지난 2008년 GM이 파산하면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800억$라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살려낸 회사가 지금의 New GM인 것이다.
또한 지난 2013년 이래 거의 10여 차례 ‘한국GM이 철수한다’는 보도와 의심이 있어 왔는데, 그 때마다 GM의 거짓 부인을 믿고 안이하게 지내 왔던 모든 당사자들(노조, 회사, 학계, 언론, 정부(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주책임) 등)의 공동 책임이기도 하다.
5년 후, 홀로설 수 있는 준비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오늘 GM이 한국에 남더라도 앞으로 3~5년 후면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GM이 떠나더라도 지금의 한국GM이 고용과 성장에 있어서 계속 한국자동차산업을 함께 이끌어가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여기에는 한국GM에서 일하고 있는 노조와 임직원 뿐만 아니라 부품업체들, 자동차산업 관계자들, 지역사회, 나아가 정부까지 포함해서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또다시 GM에게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다.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