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자 시민으로: 대한민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된다는 것은
글: 켈리 자먼 (ISC, 회원)
번역: 심태은 (ISC, 한글판 뉴스레터 편집장)
17년 전, 병역의무 회피를 위해 한국 시민권을 포기함에 따라 한국 입국금지를 당한 가수 유승준(영어 이름: 스티브 유)이 최근 한국 입국을 시도하고 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에는 한국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1]에 대하여 군복무 기간을 채우기 위해 대체 복무를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징병제는 대한민국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했다. 남성의 경우 2년여의 군사 훈련 및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군복무로 일, 가정생활 및 삶의 단절을 겪는다. 군복무를 앞둔 남성은 군복무를 하기 싫어하는 반면, 군복무를 마친 남성은 통과의례를 마친 것으로 생각한다. 군복무가 미치는 영향은 비단 한국의 남성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까지 확대된다. 한국 대기업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군대 내의 그것과 닮아 있으며, 군사독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이 남성 지원자에 군복무 경험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은 예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범죄기록 때문에 공무원으로 일할 수 없다. 또한, 군 당국은 징병된 병사들에게 북한이 한국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 노동조합과 진보 운동 세력이라는 내용을 주입시킨다 (주효정, 2014; 85p).
징병제는 한국에서의 남성성, 시민권, 그리고 사회를 구성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의무 복무제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이제 남성성과 시민권 개념이 한국에서 도전 받고 있다.
기원
한국의 의무 복무제는 미군정과 한반도 분단 이전, 일제 식민 시대때 시작되었다. 일제는 1944년 12월에 조선인을 징집했다. 그 이전에는 조선인이 무장 반란군이 될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조선인을 징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상자의 증가와 제국주의 야욕으로 인해 일제의 군사력이 한계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4년 12월부터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11만 명의 조선인이 일본 육군 및 해군으로 징집되었다. 일제는 조선인 징집을 일종의 영광이자 조선인을 강화하기 위한 권리라는 프레임으로 치장했다. 이러한 징집 담론은 일제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와 같은 수사, 즉 영광과 권리라는 논리를 앞세워 징집을 정당화했다.
또한, 한국의 징병제를 둘러싼 담론은 냉전과 일제 식민지 시대 직후 들어선 미군정에 의해 형성되었다. 대규모 군사력이 소련과의 핵전쟁을 촉발할 것을 두려워했던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군사력 규모(미국 병사 및 징집된 남성의 수)를 축소시켰다. 한국군의 수는 10만명으로 제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군수품 역시 수량이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북한과 공산주의라는 위협이라는 미명하에 징병제는 여전히 정당화 되었다. 이러한 정당화 논리는 북한과의 급격한 관계 진전으로 이전보다 약해졌으나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미국 여론은 전쟁으로 인한 많은 사상자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 사상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 전쟁에서의 미군 사상자 수를 줄이는 방안으로 한국군을 투입하는 것을 제시했다. 한국군보다 더 나은 장비를 갖추고 훈련이 된 미군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72만 명의 한국군이 필요했다(미군 1명을 대체하기 위해 한국군 2명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 이러한 안은 양국에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은 대가로 군 원조를 받았고, 이를 신속하게 용도 변경하여 사용하거나 팔아 치웠다. 미국은 대부분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현재 60만 규모의 한국군은 25만명의 직업군인을 제외하면 모두 징집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한국 전쟁 이래로 19,3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수감되었다. 그러나 실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많은 수가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신체를 훼손하거나 해외에 체류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용히 군복무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오랜 기간 군복무에 반대하는 자로, 자신의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 사람으로 규정된다.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할 시에는 자신의 신념이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기에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부분은 군복무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여호화의 증인 신도이다. 불교와 기독교 신자 중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이유로 인한 반대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90년대 초, 박석진이라는 전투경찰이 한국 대중운동을 진압할 것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80-90년대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학생들도 미군과 함께 군복무 하는 것을 반대하여 징집을 거부했다. 이 두 경우 모두 한국인이 국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개인의 종교적 신념 외의 신념을 가지고 징병제에 도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양심의 문제이며 한국의 시민권과 다른 한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이렇듯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인해 양심적 병역 거부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인 오태양 씨는 사회에서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러한 대우를 받았다. 1997년 선거에서 보수 정당 후보의 자녀가 병역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체중을 감량해 신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주효정, 2014; 97p). 한국의 진보와 보수 모두 병역 의무를 시민권의 기초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시민권과 남성성
민주화 이후, 사회가 공유하는 고통의 경험과 의무감은 한국 사회의 시민권을 구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징병제 역시 모두에게 평등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분단 국가에서 국민을 단결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군복무 앞의 평등을 강조했다 (최희정 외, 2016; 6p). 한국의 진보 정부는 원래는 징병제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그 대신 병역 의무 면제 규제를 더욱 엄격하게 시행하여 부유층 자녀의 군복무 회피를 막고자 했다. 또한, 진보 정부에서 이중 국적자가 병역 의무를 회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었다. 부유층이 고의적인 원정출산을 통해 자녀가 이중국적을 갖도록 했기 때문이다 (최희정 외, 2016; 9p). 이중 국적자는 한국에서 차별 받지 않고, 한국 시민권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군복무를 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군복무는 소년을 ‘남성이자 시민으로’ 만든다고 여겨진다. 이는 한국 남성이 거치는 통과의례로, 병역 의무가 없는 한국 여성과 남성 자신을 구분하는 요소이자 서로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군복무 기간 동안 강인함과 남성다움이 요구되며 그 어떠한 여성성도 용인되지 않는다. 이렇듯 군복무가 가지는 남성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남성은 군복무라는 ‘역차별’에 분개한다. 한국의 여성은 징병 대상인 남성에게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상징적인 의미에서 군복무를 거부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군복무는 남성이 터프해야 하고 강력한 형태의 남성성을 따라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 더해, 젠더 정체성 또한 제한한다.
병역 의무는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 생물학적인 남성 대 여성의 엄격한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는 ‘성 정체성 장애,’ ‘성적 기호 장애’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해 징병 대상자가 군복무에 적합한지를 평가한다. 근무 중인지 여부를 막론하고 ‘동성애’는 한국 군에서 금지되어 있으며, 트랜스젠더[2]는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어 한국 군에서는 성소수자의 군복무가 명백하게 금지되어 있다. 군 당국은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수용하지 않을뿐더러 이들의 성 정체성을 그저 생식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트랜스젠더가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성 생식기를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성소수자는 성소수자의 군복무를 금지하는 것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여 현행 징병법에 반대하고 있다. 성소수자는 엄격한 의미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한 성소수자 활동가는 “내 안의 여성이 군인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며 징병을 거부했다. 종교나 정치적 신념을 근거로 병역 의무를 거부하기보다, 군복무와 양립할 수 없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근거로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발언은 대법원이 엄격하게 규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정의에 도전하는 것이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대법원이 사용하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양한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주한미군 반대, 성 정체성, 다양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다. 군복무는 부담을 분담하는 것을 통해 남성과 시민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군복무 거부자에 의해 파열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복무제 도입 가능성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인식 확대는 기존의 군복무와 남성성 및 시민권 간의 불변의 연관관계를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참고문헌
Joo, Hyo Sung, South Korean Men and the Military: The Influence of Conscription on the Political Behavior of South Korean Males
Hee Jung Choi; Nora Hui-Jung Kim: Of Soldiers and Citizens: Shallow Marketisation, Military Service and Citizenship in Neo-Liberal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