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역 키신저 전략
번역: 황정은 (ISC 사무처장)
감수: 심태은(ISC 번역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평화 과정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협정의 일환으로 트럼프 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과 크림반도 일부가 러시아 영토로 남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전의 국경으로 돌아갈 것을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즉, 크림반도는 러시아와의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미국이 관여하는 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헤그세스는 미국이 유럽의 안보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임을 NATO에 밝혔다. NATO의 유럽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크라이나가 회담에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것뿐이지만,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양보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에 반대는 거의 없었다. 헤그세스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지만, 의제는 트럼프가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허용할지는 자유세계의 지도자, 즉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에 달려 있다'고 중서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미국 카우보이가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고 온몸으로 말한 것이다.
헤그세스가 브뤼셀에 있는 동안 트럼프는 측근인 일론 머스크와 함께 워싱턴 DC에 있었다. 두 사람은 정부 지출 삭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 정부, 특히 사회 복지 부문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무기 산업과 같이 대기업이 독점적으로 지켜온 산업만 남았다. 이 산업은 언제나 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고, 미국 군비 삭감은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록히드 마틴의 F-35 전투기 보조금 지급이 중단될 수도 있지만) 무기 산업은 안심해도 될 것이다. 머스크와 그의 팀은 군사 계약 감축이 아니라 군인과 민간인 직원을 감축할 것이다. 인준 청문회에서 헤그세스는 상원 의원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는 7명의 4성 장군이 있었는데 지금은 44명이라면서, “군대의 규모와 전쟁의 승리는 반비례한다. 상부에 관료가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 더 많은 전투 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군은] 더 치명적으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가 있다. 때때로 '미국 우선주의'를 고수해 미국에 아무런 이익이 안 되는 값비싼 전쟁을 하지 않으려는 극우 대통령의 특이한 행동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논의하려고 푸틴과 통화한 것과 미군 정책을 펴는 방식에 대해 단편적이며 잘못된 평가를 한 것이다. 이를 트럼프의 고립주의 전략으로 보기보다는, 트럼프가 역 키신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즉,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맺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미국의 실질적 위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유럽에 판매하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한 원자재 거래가 미국의 세계 경제 지배를 근본적으로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급속한 기술과 과학 발전과 새로운 생산력 발전은 미국이 세계 경제의 핵심 부문을 지배하는 데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느끼는 ‘위협’이 바로 트럼프가 동맹과 적에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키신저 전략: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어 러시아를 고립시키다
헨리 키신저(1923-2023)는 미국 외교 정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관료이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임 기간 키신저는 사실상 미국의 외교 정책을 전담했다. 닉슨과 키신저는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PRC) 사이의 분쟁을 면밀히 주시했다. 닉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전바오 섬을 둘러싼 소련과 중국의 국경 분쟁은 소련이 베이징에 핵 공격을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키신저는 이 분쟁이 미국에 큰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이 분쟁으로 유라시아의 두 거대 국가가 NATO로 대표되는 대서양 동맹에 맞서 필수적인 연합을 구축하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러시아와 중국이 연합한다면 세계에서 서방의 세력 기반을 약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동맹을 막는 것이 필수적이며, 중-소 분쟁을 이용하여 양국 사이에 깊은 골을 내는 것이 키신저 정책의 핵심이었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베트남 민족 해방군의 병참 보급로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이유로 키신저는 1970년에 파키스탄을 통해 중국 정부와 비밀 회담을 시작했고, 1971년에 비밀스럽게 베이징을 방문했으며, 이듬해 닉슨이 중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키신저는 중국 방문 후 백악관 직원에게 비밀 구두 보고를 통해 “중국인들은 매우 진지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 점을 착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소련의 압박과 동남아시아의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중요한 의견을 제시했다. 닉슨의 유례없는 중국 방문은 전적으로 미국이 아시아에서 지배력을 구축하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추진되었다.
소련이 붕괴한 지 오래되었지만,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유럽을 종속시켜 장기적인 지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키신저의 600페이지 분량의 저서 <중국 이야기>(2011)의 기본 논지이다.
트럼프의 역발상: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맺고 중국을 고립시키다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의 기득권은 러시아와 중국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전략을 세웠지만, 그중에서도 러시아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했다. 외교 정책 엘리트 사이에서는 1991년부터 1999년까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에 러시아가 미국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고,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작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8년에 러시아가 G7에 가입한 것은 그러한 예속의 정점이었다. 러시아에서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부활하고 유럽 지향적 문화가 발전하면서, 러시아는 서구의 유산을 수용하고 주권이나 아시아,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벗어났음을 시사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당신과 함께 이 일을 끝까지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기득권의 극우파는 2000년대 말 두 가지를 파악했다. 첫째, 중국 생산력의 기술 발전이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지배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의 새로운 민족주의는 푸틴의 애국 정당의 출현으로 확인된 주권과 백인 우월주의, 러시아 정교회(알렉산드르 두긴의 이론에 기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극우에는 러시아 애국 민족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중국 공산주의를 적으로 보는 세력이 있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부터 중국을 고립시키고 유럽을 종속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키신저의 전략을 뒤집은 이 전략은 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반동적이고 위험하다. 미국의 패권을 보장한다는 목표는 똑같은 분열 전략이지만, 행위자만 뒤바뀐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시 트럼프는 러시아의 개입으로 혜택을 받았다고 비난받았다.
미국이 지금 하는 일은 2007년 푸틴이 뮌헨 안보 회의에서 미국과의 공식적인 결별을 선언한 후 중국과 러시아 간에 맺어진 관계를 끊으려는 시도이다. 중국과 러시아 간의 협력은 빠르게 발전했으며, 두 나라는 루블화와 위안화로 상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가운데 안보 협정을 맺었다. 이 관계를 끊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이것이야말로 트럼프가 실행하려는 전략이다.
1971년 키신저가 중국 지도부에 대해 한 평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관심은 100% 정치적이다… 이 사람들은 이념적으로 순수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저우언라이가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생기기 훨씬 전인 1920년 프랑스에서였다. 이 세대는 50년 동안 싸우고, 대장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무역을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니다.” 이 평가는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진핑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준다. 푸틴과 시진핑도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 맞선 투쟁에서 강해졌다. 허울 좋은 미끼로 푸틴이 트럼프의 역 키신저 전략을 채택하도록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