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 에콰도르 모레노 대통령이 개헌 국민투표에서 승리했지만 전임 꼬레아 대통령의 시민혁명은 여전히 강력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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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데니스 로가티크(Denis Rogatyuk)번역: 홍정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그린 레프트 위클리(Green Left Weekly)의 “Ecuador’s Moreno wins referendum, but Correa’s Citizens’ Revolution retains strong base” (https://www.greenleft.org.au/content/ecuadors-moreno-wins-referendum-correas-citizens-revolution-retains-strong-base)를 번역한 글입니다.

2월 4일 “국민과의 협의”란 이름으로 치러진 에콰도르 국민투표에서 7 개 항목 [1]에 대해 평균 67 % 지지를 얻으며 레닌 모레노 정부가 승리하였다.

모레노는 대통령의 무제한 연임 제한, 시민참여위원회(CPCCS) [2] 재구성, 전직 좌파 대통령인 라파엘 꼬레아 [3]가 도입한 토지와 부동산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폐지를 골자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집권 여당인 국가연합당(알리안스 파이스) [4]에서 탈당한 친꼬레아 활동가들이 새롭게 결성한 시민혁명운동(MRC)과 함께 국민투표 반대 캠페인을 주도했던 꼬레아에게 있어 이번 투표 결과는 일견 실패로 보인다.

꼬레아를 비롯해 전 국가연합당 활동가 대다수는 모레노를 “배신자”라 불렀다. 왜냐하면 2007 년 꼬레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시작된 서민을 위한 시민혁명 정책을 계속 이어가겠다던 자신의 공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꼬레아 정부에서 6 년 동안 부통령을 지냈던 모레노가 시행한 국민과의 협의는 시민혁명의 업적과 개혁에 역행하는 시도라고 보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국민과의 협의를 2021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차기 대선에 꼬레아가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모레노의 책략으로 간주했다.

국민투표 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을 펼친 대다수 우파 야당은 투표 결과를 승리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투표 결과 분석
그러나 투표 결과를 면밀히 살펴보면 모레노가 시민혁명의 유산과 업적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계속할 경우 직면하게 될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나타난다.

반대 캠페인은 주로 꼬레아와 MCR 활동가들이 이끌었지만, 찬성 캠페인은 거의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민간 및 새롭게 재편된 공영 매체의 지원을 받았다.

우익인 하이메 네봇 [5] 과야낄 [6] 시장, 지난 4 월 대통령 선거에서 모레노의 최대 경쟁자였던 기업 은행가 기예르모 라소 [7], 압달라 부까람 [8] 전 대통령, 루씨오 구띠에레스 [9] 전 대통령이 찬성 캠페인의 핵심 인물들이다.  

소수 좌파 정당들 또한 찬성 캠페인을 지지하였다.

투표 결과를 분석해 보니, 찬성표 중 28 %는 라소 지지자, 16 %는 네봇 지지자, 4.8 %는 부까람 지지자, 0.7 %는 구띠에레스 지지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의 2 %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되는 모레노 지지자까지 합해 이 우파 동맹은 67 %의 찬성표를 획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반대표 33 %는 오롯이 꼬레아와 그의 지지자들이 이끌어 낸 것이며, 이는 사실상 찬성표를 구성한 각 세력의 투표율보다 높은 수치이다.    

정치 지형이 전혀 고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꼬레아와 MCR은 에콰도르에서 가장 큰 단일 정치 세력인 것이다.

법적 논란
국민과의 협의는 결과가 발표 되자마자 법적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미주기구(OAS)와 미주인권위원회(CIDH)는 국민투표의 특정 측면과 7 개 안건의 내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OAS는 모레노의 국민투표 개시 명분에 대한 적법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국민과의 협의와 국민투표가 공식 소집되기 전에 헌법재판소의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모레노 정부는 사실상 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했다.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 안건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 공청회를 요구하자, 모레노가 법원은 국민투표 안건을 승인하고 헌법 재판관 중 두 명이 이 조치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CIDH는 행정, 선관위, 사법 체제의 모든 공무원을 즉각 해임하고, 모레노 자신이 지명하는 “임시 위원회”로 교체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모레노가 CPCCS에 제안한 변경 사항에 따라 검찰총장, 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등 주요 공직자 선출 과정을 감독하는 현 CPCCS 위원들은 헌법에 명시된 재임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임되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임시 위원회”로 대체될 것이다.

따라서 모레노는 검찰, 선관위, 감사원 등의 미래 방향성과 정치적 연계에 대해 실질적으로 감독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레노는 이러한 논란들을 부인하고 국제기구가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한 투표 결과에 따라 우익 야당과의 “합의”를 꾀한다는 주장도 일축했다. 하지만 모레노가 이전에 야당과 공조한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논란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모레노는 대통령으로 선출 된 직후, 네봇과 부까람과 같은 야당 구성원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화해를 위한 “지도자 연석회의 [10]“를 시작했다. 모레노는 부까람 일가를 수력 발전 프로젝트의 수장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꼬레아 진영의 낙관 
그러나 국민투표 결과는 꼬레아 진영의 사기를 저하 시키지는 못했다.

꼬레아는 2 월 4 일 해질녘에 “1992 년 2 월 4 일 부패한 까를로스 안드레스 뻬레스 [11] 정부에 저항한 군사적 반란이 실패하자, 젊은 우고 차베스 [12]는 ‘현재로서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투쟁은 역사가 되었다. 26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와 똑같이 말하고 우리의 이후 투쟁은 역사가 될 것”이라며 트위터로 메시지를 전했다.

꼬레아의 메시지는 시민혁명 프로젝트에 헌신적인 정치 세력들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패했지만, 국민투표 반대운동 자체는 지난 10 년간의 진보와 변화의 성과와 업적을 지켜내기 위한 새로운 조직 기반을 창출해냈다.

Notes:

  1. 부패 공직자의 피선거권 박탈, 선출직 연임 제한(1회 연임 가능), 시민참여위원회 개혁, 아동 대성 성범죄 처벌 강화, 자연보호구역 내 금속자원 개발 금지, 부동산 초과이익 환수법 폐지, 야수니 국립공원 유전개발 제한이라는 총 7개 안건이 상정되었고, 각 안건별로 개헌에 찬성/반대 여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국민 투표가 진행되었다.
  2. Council of Citizen Participation and Social Control (CPCCS)
  3. Rafael Correa
  4. Alianza PAIS
  5. Jaime Nebot
  6. Guayaquil
  7. Guillermo Lasso
  8. Abdala Bucaram
  9. Lucio Gutierrez
  10. national dialogue
  11. Carlos Andres Perez
  12. Hugo Chav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