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크라우드 소싱 개헌, 우리가 배울 것은?

2009년 국민의회 (출처: Foreignpolicy)

2009년 국민의회 (출처: Foreignpolicy)

원종일 (한국 요약팀, ISC)

우리는 민중의 힘으로 이승만, 전두환 그리고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분노한 민심은 나쁜 정권을 몰아냈을 뿐,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지는 못했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이룬 성과지만 국민이 직접 참여해 만든 헌법은 아니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촛불혁명, 우리는 오래된 부정부패와 불평등을 청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2010년 아이슬란드는 민중이 모여 개헌안을 만들었다. 우리도 이제 1987년 헌법개정을 준비하고 있기에, 아이슬란드의 직접민주주의의 실험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는 어떻게 촛불혁명 이후의 과제를 완수할지 확인해 보자.

2008년 금융위기로 아이슬란드의 경제는 불안정해졌고 정권은 정당성을 잃었다. 당시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파산하자 이미 높은 이율로 큰 이익을 봤던 외국 예금주들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의 보수 정권은 국민 세금으로 외국 예금주들의 돈을 지급하려 하였고 아이슬란드 국민은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며 프라이팬과 냄비를 들고 거리 시위에 나섰다.

‘주방용품 혁명’이라 불리는 이 혁명으로 2009년 1월 26일 하르데 총리와 정권이 총 사퇴했다. 이후 치러진 조기 총선으로 2009년 2월 1일 사회민주동맹(SDA)의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가 총리로 선임되었고 SDA는 좌파녹색운동(LGM)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였다.

전(前)정부가 금융위기 대처에 실패하자, 아이슬란드 국민은 당시 헌법의 주요  문제점 두 가지를 알게 되었고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첫 번째 문제는 1944년 제정된 헌법에는 총리 역할 규정이 없어 중대한 위기에 총리가 아무런 역할(부작위)을 하지 않아도 법적인 책임(사퇴)을 물을수 없었다. 두 번째는 헌법이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정부 구조와 문화에 확립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경제 위기 이전부터 정부의 규제기관과 정치인이 부패하여 금융권의 부정행위를 방조하거나 그로부터 이득을 보았다. 결국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론이 높아졌고 2010년 6월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와 SDA-LGM 연립정부가 헌법의회를 설립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헌법의회법(Act on a Constitutional Assembly)에는 의회가 임명한 헌법위원회가 국민포럼(National Forum)을 구성해 국민이 직접 헌법 개헌안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새 헌법 초안을 작성할 헌법의회 의원 25명을 투표로 선정하고 헌법위원은 국민이 추천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고 이 후 의회에서 두 번의 표결을 해야 했다. 국민이 참여한 개정헌법에 담길 내용을 만든 개헌운동 중심에는 국민포럼이 있었다. 국민포럼은  2009년 풀뿌리 시민 단체 연합 앤트힐(Anthill)이 조직 한 국민의회(National Assembly)를 모델로 삼았다.

2009 국민의회는 비공식 국민 총회를 열어 아이슬란드 국민의 집단지성을 모아 가장 중요한 가치를 규정하고 아이슬란드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만들었다. 시민 1,500명을 모집하였는데, 그 중 1,200명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300명은 이익단체 및 정부관료로 구성하였다.

국민의회 회의의 모든 과정은 “아고라(Agora)”라고 하는 앤트힐 내부의 시민단체가 발행한 ‘핸드북’에 근거하였다. 핸드북은 과정상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이후 이와 같은 국민적 회의 시에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핸드북에서 제시한 원칙 중 하나는 국민의회 참가자가 오로지 자신의 입장과 시각만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국민의회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조정자(facilitator)가 진행했고 그들은 중립적인 입장으로 모든 참가자가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주었다. 참가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규정하기 위해 토론과 투표,  아이디어 통합 과정을 진행하였다.

또한, 앤트힐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과 후에도 온라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민의회를 홍보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편을 통해서 국민을 국민의회에 초대하기도 했는데 이는 노년층을 포함한 일부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국민도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의회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뽑힌 것은 진실성이었는데 이는 정치인의 부패와 부정으로 발생한 경제위기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었다.

2009 국민의회에서 참가자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토론한 후 투표한 결과 진실성이 뽑혔다. (출처: Icelandreview)

2009 국민의회에서 참가자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토론한 후 투표한 결과 진실성이 뽑혔다. (출처: Icelandreview)

 

크라우드 소싱 헌법 개정
2010년 11월 6일, 정부에서 설립한 헌법위원회는 공식적으로 2010 국민포럼을 개최하였다. 헌법위원회가 국민포럼을 조직했지만 절차적 모델을 제시하고 핸드북을 제공하는 등 포럼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은 앤트힐이었다. 여론조사 기업인 ‘갤럽아이슬란드(Gallup Iceland)’의 협력으로 참가자를 선정했는데 성별과 연령, 지역 등을 균등하게 나눠 각 계층을 대표할 수 있게 1,000명을 선정하였다.

국민포럼은 개정 헌법에 들어갈 8가지 주제 – 주권과 자립, 도덕성, 인권, 정의와 복지 그리고 평등, 자연보호와 미래 세대까지 포함한 천연 자원의 공공사용, 권력분립 및 책임감과 투명성, 평화와 국제적 협력 -를 정했다.

국민포럼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한달이 채 안된 시점인 11월 27일, 헌법의회 [1] 선거가 열렸고 국민의 36%가 참여하여 총 522명의 후보 중 25명의 대표단을 선출하였다. 선거가 끝난 후, 보수야당인 독립당 관계자 3명은 선거법상 명시된 투표 절차를 위반했다며 대법원에 선거 무효 진정을 제출했고 대법원은 그들의 주장을 수용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의회는 25명을 선출하는 과정에 있어서 절차적 문제는 있었지만 투표결과를 무효화할 정도의 부적절한 방법이 동원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의회는 투표에서 당선된 헌법의회 대표 25명을 재임명하여 헌법심의회(Constitutional Council)를 구성하여 이전 헌법의회 대표직과 기본적으로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다. 그 중 한명은 대표직을 포기하였고 26번째로 많이 득표한 후보가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헌법심의회는 2011년 4월부터 7월 29일까지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활동하였다. 헌법심의회는 세 개의 실무단으로 나눠서 개헌 작업에 착수하였다. 각 실무단은 기본 가치, 대통령의 역할,  대중의 민주적 참여 보장 등 각각 다른 주제를 맡아 논의하였다.

헌법심의회는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해 진행 중인 논의를 공개했고 유투브, 트위터, 페이스북, 플릭커를 통해 국민이 직접 의견을 제안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헌법심의회 페이스북 페이지에만 무려 3,000개의 제안 댓글이 달리기도 하였다. 또한 헌법심의회는 이 제안들을 모아 가장 인기있는 제안을  헌법 조항으로 적용한 것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동물 보호 조항이다.

헌법심의회의 개헌안은 경제 위기의 여파로 발생한 사회적·정치적 논쟁을 검토한 것으로 그 문제의 원인을 정부의 도덕적 공백, 행정부의 역할과 책임 부재, 직접 민주주의의 통로 부족에서 찾았다. 또한 심의회는 이전 헌법과 달리 개정 헌법에필요한 기본적 가치를 넣기 위해 전문을 추가했다. 특히 국민이 발의한 전문에 일반적으로 생명권의 주체를 인간으로 한정하는 것과는 달리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 존중이라는가치를 넣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아이슬란드는 자유로운 주권국가로서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초석으로 하며, 정부는 시민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시민 문화를 장려할 것이며, 인간과 국가 그리고 국가 생활권의 다양한 생명을 존중한다.” 또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한 조항도 있다. 유권자의 10%가 발안할 경우 국회에서 통과한 법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고, 유권자의 2%가 동의할 경우 예산, 세금, 시민권을 제외한 모든 이슈를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유권자의 10%가 국회에 법률안 발의를  할 수 있다.

헌법심의회는 만장일치로 이 개헌안에 찬성하였고 이후 남은 절차는 1번의 국민투표와 2번의 국회  투표였다.

개정안 인준 과정의 실패
유권자 49%가 국민투표에 참여해 개헌안 찬반 투표를 하였고 국민투표에서 던진 6가지 질문에 압도적인 찬성표가 많았지만 국민투표는 구속력이 없었다. 찬성표가 높았던 6가지 질문은 개헌안(73%), 1인 1투표 원칙 (67%) [2], 천연 자원의 공공소유 [3] (83%), 총선 주기 축소 (78%), 국민소환권 강화 (73%) 그리고 국교지정 (57%)이었다.

국민은 압도적으로 개헌안을 찬성하였지만 개헌안은 헌법에 규정된 의회 투표는 하지 못했다  2차례 의회 투표는 SDA-LGM 연립 정부에겐 정치적 부담이 컸는데, 그 이유는 당시 여당은 해외 부채를 국민 세금으로 갚으려 하였고 국민여론과는 달리 EU가입까지 시도하여 지지를 잃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회가 개정 헌법을 인준한 후 해당 의회는 해산하고 새로 당선된 의회가 다시 헌법 개정안 승인을 해야한다. 당시 SDA-LGM 연립정부는 지지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 해산 후 치러질 선거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결국 헌법개정안 투표를 하지 않았고 임기가 끝나 치러진 총선에서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즉, SDA-LGM 연립정부는 헌법개정안 투표 없이 4년 임기를 마쳤다.

대신 SDA-LGM 연립정부는 임기가 끝나기 전 국회의 3분의 2와 유권자의 40%가 헌법 개정안을 찬성할 경우 위에 언급한 1944년 헌법에서 명시한 개정절차 없이 개정을 확정지을 수 있는 법률안을 통과 시켰다. 의회 해산 조항과 재선거 조항이 없다면 임기 중 의원직을 잃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의회가 임기를 마친 후 총선에서 보수 야당인 독립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헌법 개정은 무산되었다. 결국 국민의 뜻을 담은 헌법 개정안이 만들어졌지만, 정치적 관성을 극복할 만큼 충분한 민중의 힘을 모아내지 못했다.

아이슬란드 개헌 과정의 교훈
아이슬란드의 헌법 개정 과정에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 아이슬란드의 개헌은 국민이 주도했다. 개정 헌법의 틀을 만들고 원칙을 제시한 국민포럼을 시작으로 투표로 당선된 헌법심의회가 개헌안을 낸 과정은 단순히 국민이 개헌과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것이다. 둘째, 헌법심의회 개헌안 도출 과정은 매우 투명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우편을 통해서도 더 많은 국민의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궁극적으로 이런 직접민주주의적 과정을 통해 개헌안에 법을 철폐할 수 있는 국민투표제를 포함한 것처럼개헌안 또한 직접민주주의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훈이 한국의 개헌과정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결국 개헌안 제출을 못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를 통해 국민공론화를 통한 개헌안을 작성하려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민이 처음으로 개헌 과정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주도적인 역할은 못하고 있다.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는 시민단체와 학계, 각 정당과 논의를 한 뒤에야 전국을 4개권역 [4]으로 묶어 국민 간담회를 하고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과정은 아이슬란드 사례에 비추어보았을 때 반대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이 참여한 국민포럼과 같은 과정을 한국에서는 마지막에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는 이런 과정에 대해 좀더 직접민주주의적인 헌법개헌안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비판했다. 그리하여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는 3월 3일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와는 별도의 국민 1000인 원탁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벌써 개헌안 준비과정이 절반이나 지났지만 [5]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최대한 국민의 직접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더 많은 국민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자회견이나 잛은 신문 기사를 통한  홍보만이 아니라 현판 광고, 버스 광고 그리고 공익 광고 등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현재 개헌안을 논의 중이고 헌법이 국민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도 대부분은 개헌 과정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개헌과정은 누군가의 리더십을 통한 것이 아닌 국민의 참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사회적 역동성이 필요하다. 결국 헌법 인준에 필요한 많은 의원수를 보유한 가장 보수적인 자유한국당의 극단적인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겨울 촛불 혁명만큼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아이슬란드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현상유지를 위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The [Icelandic] Constitutional Council – General Information (헌법 심의회- 총강)

The Iceland Experiment (2009-2013): A Participatory Approach to Constitutional Reform (아이슬란드의 실험(2009-2013):  헌법 개정의 직접민주주의적 접근)

The main conclusions from the National Forum 2010 (2010국민포럼에서의 결론)

The Writing of the new Icelandic Constitution (audio) [아이슬란드의 새 헌법을 쓰다(오디오)]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 웹사이트

Notes:

  1. 헌법의회법에 따르면 헌법의회는 헌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검토와 개헌을 위한 법안을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하는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헌법의회에 참여하는 25명의 위원들은 2010년 11월 직접선거로 선출되었다.
  2. 1인 1투표는 농촌과 도시 간의 인구 불균형으로 발생된 의석 수에 대한 불평등 때문에 제기된 것으로 농촌 지역보다 도심지에서 한명의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는 불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헌법심의회 의원인 토르발두어 길파손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3. 여기서 말하는 천연자원의 공공소유는 국유화가 아닌 국민화의 개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국가가 천연자원을 팔 수 없게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아이슬란드의 천연자원은 모든 후손이 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는 것이다.(헌법심의회 의원인 토르발두어 길파손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4. 한 권역마다 200여명의 남녀로 구성되었다.
  5.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는 2월 13일에 활동을 시작해 3월 13일에 활동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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