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 운동의 발전, 언제나 미투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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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글: 황정은(사무국장, ISC)

최근 서지현 검사가 2010년 검찰 상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후 법조계와 문화예술계에서 미투  운동(#Me Too, “나도 당했다”)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은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운동이 아니다. 미투 운동을 역사적 맥락에서 보고 현재 상황을 알아보고자 국제전략센터는 박지아 서울여성회 부회장/성평등교육센터 센터장을 인터뷰했다. 20년 넘게 여성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박지아 센터장은 반성폭력 운동을 위한 교육과 성폭력 사건 해결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를 재구성한 글이다.

미투운동, 역사적 맥락으로 봐야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이 부상했고 2017년까지 계속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 페미니즘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최근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인터뷰 후 법조계와 문화예술계에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 운동과 이를 지지하는 위드유 운동(#With You, “당신과 함께 하겠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감추거나 은폐했던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미투 운동은 실제로 자신이 당한 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며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폭로하는 반성폭력 운동이다. 역사적으로 반성폭력 운동은 피해자가 성폭력 사실을 밝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우며, 법과 제도를 바꾸며 현재에 이르렀다. 민주화 운동으로 공안탄압이 심했던 1986년, 노동 운동을 위해 공장에 투신해 활동했지만 학생 출신인 것이 밝혀져 경찰에 체포당해, 성고문을 받았던 권인숙(현재 법무부 성범죄 대책 위원장)은 당시 주위의 만류에도 성고문 사실을 밝혀 독재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혀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존재자체를 거부했던 당시 일본 정부에 맞서 싸웠고 그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993년 우조교는 서울대 신교수의 성희롱 사건을 밝히고 6년간 법정에서 싸워 이겼고, 직장내 성희롱 예방법 제정의 계기를 마련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이러한 각국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할 수 없어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일까?”라는 가해자의 언어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내가 당한 일은 성폭력이었다”라는 언어를 준 것이다. 이렇듯 반성폭력 운동은 세상을 바꿔나가고자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과 그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여성의 대한 억압은 보편적이고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양상에 특징이 있을까? 문화적 특성에 따라 사건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경우 법과 제도는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게 많이 만들어졌지만,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재판의 잘못된 판례가 많이 남아있고 여전히 그러한 판례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양상으로 일어난다. 또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일터와 삶터, 그 외 모든 장소에서 성폭력은 발생한다. 성폭력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만드는 분위기, 피해자 비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보편성을 가지는 성폭력의 원인은 ‘남성은 욕망과 성적인 행동이 많을수록 남자답고 여성은 적을수록 여성답다’라는 이중잣대와 같은 성별 권력이 존재하기 떄문이다. 또한 사회 안에서 권력을 매개로 발생하는 폭력이기도 하다. 사회 안에서 권력은 거의 남성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이 가해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의 미투 운동, 무엇이 달라졌나? 여성인권과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면서 법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2014년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고소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가 폐지되었다. 친고죄 조항은 성폭력 피해자가 외부로 드러나면서 받는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혀 성폭력 문제를 폭로하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 유발론과 순결주의에 맞서 싸워왔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의 대한 낙인이 점점 줄어들어 친고죄 폐지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금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더이상 자신의 이름을 감추는 문화는 끝났다고 말한다. 또한 미투 운동의 힘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미투 운동에 동참한 많은 사람은 ‘내 이후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피해자 낙인과 일정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투쟁이다. 차별과 억압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잘못을 깨닫고 권력을 내려놓는 일은 없기 때문에 미투 운동은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마음과 투쟁없이는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신념으로 하는 운동인 것이다.  

왜 미투 운동 방식일까?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일주일 정도 생활이 힘들고 괴로웠다. “그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겪었던 수많은 일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도 수많은 여성이 “공감한다”, “내가 겪었던 일이 악몽처럼 되살아났다”는 글을 올렸다. 그래서 “미투”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의 보편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여성이 당한 일이 나와 같다. 그래서 사회 억압과 차별 때문에 가해진 폭력을 누군가 용기내어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같이 용기내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성폭력 운동이 강해질수록 역풍이 심해진다? 그렇다. 역사적으로 여성운동이 일정한 힘을 가질 때 항상 역풍이 여러가지 형태로 일어났다. 예를들어 독일의 여성주의자, 알리체 슈바르처에 따르면 여성이 힘을 갖기 시작하자 외모와 모성을 강조하는 역풍이 있었다. 현재 미투 운동이 마녀사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된 흐름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주요한 것은 여성들의 폭로 이후에 사회의 법과 제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한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성폭력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할지, 가해자는 어떻게 처벌할지, 권력을 이용한 범죄를 어떻게 문제삼을지에 대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 무엇이 필요한가?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기준은 피해자의 치유, 가해자의 변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한 사회 변화의 계기,  세가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이 세 가지 기준 중 그 어느것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가해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가해자의 변화를 위해 교육을 진행하고, 사회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 논의해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별 권력과 사회적 권력으로 쉽게 성폭력을 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해결책은 한 국가 안에서만 실행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여성에 대안 억압이 보편성을 가진 것처럼 이에 대한 투쟁을 세계적으로 연대해서 해야 한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성폭력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사회를 바꾸는데 반드시 필요한 문제임을 깨닫고, 맞서 싸우는 힘이 필요하다.  이러한 힘은 우리가 변화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일터와 삶터에서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남성의 위드유 운동은 초반에 많은 공격을 받았다. 말로는 함께 하겠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는 여전히 권력을 누리며 일상에서의 폭력에는 침묵했기 때문이다. 최근 배우 콜린 퍼스는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우디 알렌과 더이상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가 가진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사례로 제대로된 위드유 운동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미투에, 심지어 미투라고 발언하지도 못하는 문제에 대해 내 삶터와 일터에서 함께 싸워야 한다.